노트를 한 장 뜯었지 이 글을 쓰기 전에
난 뭐든 시작은 완벽하게 하고 싶어 해
이게 무슨 말이냐면 노트를 사면 난 처음에
쓴 글이 마음에 들 때까지 첫 장을 뜯어내
이 병신같은 짓의 반복에
결국 노트는 가볍게 돼버리고
쓰레기통엔 아직 반도 안 적힌
종이들만 쌓여대
이 습관은 환경에 좋지 않아
물론 너한테도 그냥 막 써
내가 이러는 게 다 강박 탓이래 의사가
처음엔 인정하기 싫었는데 맞는 말 같아
나의 삶도 마찬가지 완벽한 한 장을 위해
난 얼마나 많은 걸 버려왔나
근데 중요한 건
난 한 번도 완벽한 첫 장을
완성해 보지 못했단 걸
그사이 또 난 다른 흠을 발견해
완벽하고 싶지만 난 안 완벽해
난 항상 그래왔듯 완벽하지 않아
아,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말이야
만들다 만 관계들이 자꾸만 쌓여가
다 내가 완벽하지 않아서인 걸 알아
사랑을 몇 번 잃었지 이 나일 먹기 전에
난 첫사랑만큼은 완벽하게 하기를 원했지
운명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긴 연애
끝에 결혼하는 조금은 비현실적인 story
하지만 내가 완벽하지 않아서 일까
현실은 나의 계획과는 자꾸 빗나가
그렇게 첫사랑은 떠났고 난 자기합리화해
‘얜 내 첫사랑이 아니었어’
뜯고 다음 장에서부터가 진짜라고
그렇게 또 얇아져
공책은 뜯을 수라도 있지 기억은 안 사라져
내 머릿속에 쌓인 구겨진 채 버린 관계
내 노트만큼이나 나의 사랑도 얄팍해져
난 항상 그래왔듯 완벽하지 않아
아,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말이야
만들다 만 관계들이 자꾸만 쌓여가
다 내가 완벽하지 않아서인 걸 알아