비가 갠 아침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거릴 걷다가
나 없이도 계절은 변하고 아름답다는 걸 깨닫는 게
맛있는 걸 먹으면서도 곧 다시 배고파질 걸 아는 게
널 위했던 배려가 칼날이 되어 내 등을 꽂던 그 날을 생각해보는 게
의미가 있나요 무슨 의미 있나요
우린 12월 31일 11시 40분쯤 겨우 태어난걸요
어떻게 다 알까요 스쳐 지나갈 뿐이죠
잠시 머물다 희미해져 버린 당신의 옅은 흔적처럼요
구름 한 조각 들판의 잡초 곡식의 애벌레 그만큼도
삶에 충실하지 못한 듯한 자책에 마음 무너지는 일들이
감성 충만했던 밤과 무수한 사랑의 말들 그 괴로움이
고작 몇 밀리그램의 호르몬과 같은 거란 참 편리함이
나를 사랑해주는 너를 애써 차단하고 돌아서 울던 그 밤에
나도 몰랐던 내 욕망에 취해 비틀대던 역겨운 내 모습을 보는 게
전하지도 못할 마음을 메모장에 빼곡히 적고 아파하다가
실수인 듯 지워 버리고 그래 잊고 살아야지 다짐해보는 오늘이
의미가 있나요 무슨 의미 있나요
우린 12월 31일 11시 40분쯤 겨우 태어난걸요
어떻게 다 알까요 스쳐 지나갈 뿐이죠
잠시 머물다 희미해져 버린 당신의 옅은 흔적처럼요
그래도 잘 지내요
아무 문제 없어요
오히려 누군가는 내 하루를
그저 부러워할지도 모르죠
근데 의미 없어요
나는 그냥 나일 뿐이죠
결국 잡지 못할 환상을
쫓다 손에 쥔 모든 걸 놓아 버리죠